전국 은행나무 23곳 중, 나무 한 그루를 보러 가는 7곳
은행나무를 찾으면 길과 숲이 먼저 나옵니다. 그런데 그중에는 나무 한 그루가 목적지인 곳이 따로 있습니다.

은행나무를 찾아보면 대개 길이 먼저 나옵니다. 가로수가 늘어선 거리, 노랗게 깔린 숲길. 사진이 잘 나오는 곳들입니다.
그런데 전국을 한자리에 놓고 보면 성격이 둘로 갈립니다. 스물세 곳 가운데 아홉은 길도 숲도 아닌 나무 한 그루입니다. 마을 한가운데, 향교 마당, 댐이 들어서며 만든 인공섬 위에 한 그루씩 서 있습니다.
- 전국에
- 23곳
- 주차가 된다고 적힌 곳
- 18곳
- 시간 제한 없이 열린 곳
- 19곳
- 주말에 쉰다는 말이 있는 곳
- 1곳
철 지난 곳과 안내가 내려간 곳은 뺀 은행나무 숫자입니다.
한 그루짜리는 대개 수백 년이 넘었고 천연기념물이나 보호수로 지정돼 있습니다. 그래서 길과는 가는 이유가 다릅니다. 길은 걸으러 가고, 이쪽은 나무를 보러 갑니다. 차를 대고 몇 걸음이면 닿는 곳이 대부분이라 오래 걸을 일도 없습니다.
다만 언제 노래지는지는 저희가 알 수 없습니다. 해마다 다르고, 같은 해에도 남쪽과 북쪽이 몇 주씩 차이가 납니다. 떠나기 전에 그 지역 소식을 한 번 더 보시는 편이 낫습니다.
아래 일곱 곳은 주차가 된다고 적혀 있고, 여는 시간에 제한이 없고, 사진이 남아 있는 곳만 골랐습니다. 아홉 곳 중 둘은 뺐습니다. 한 곳은 사진이 없어서, 다른 한 곳은 미리 연락해야 볼 수 있다고 적혀 있어서입니다.

영월 하송리 은행나무
강원 영월군
영월읍 하송리, 집들이 들어선 마을 한가운데 서 있습니다. 높이 23m 에 가슴 높이 둘레가 14.5m 입니다. 원래는 대정사라는 절 앞에 있던 나무인데 절이 없어지고 그 자리에 집이 들어서면서 마을 가운데가 됐습니다. 나이는 천 년에서 천이백 년으로 전해집니다.
주차가 되고 여는 시간이 따로 없습니다. 마을 안이라 차를 대고 바로 걸어 들어갑니다. 울타리 너머로 보는 것이 아니라 나무 밑까지 갈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입니다.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 속에 신령스러운 뱀이 산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개미도 닭도 개도 가까이 오지 못하고, 아이가 나무에서 떨어져도 크게 다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때는 북쪽 가지가, 광복 때는 동쪽 가지가 부러져 나라의 슬픔과 기쁨을 미리 알렸다는 이야기도 함께 남아 있습니다. 자식을 바라는 사람들이 와서 빌던 나무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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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반계리 은행나무
강원 원주시
원주 문막읍 들판 가운데 있습니다. 높이 33m, 줄기 둘레 16m, 밑동 둘레 14m. 가지는 동서로 37.5m, 남북으로 31m 퍼져 있습니다. 나이는 정확히 모르고 팔백 년이 넘은 것으로 봅니다.
주차가 되고 상시 개방입니다. 들판 한가운데라 앞을 막는 것이 없어 나무 전체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 이 글의 일곱 그루 중 가장 멀리서부터 보이는 나무입니다.
심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둘로 갈립니다. 성주 이씨 선조가 심었다는 쪽과, 지나가던 스님이 물을 마시고 짚고 있던 지팡이를 꽂았는데 그게 자랐다는 쪽입니다. 여기도 나무 속에 흰 뱀이 산다고 해서 함부로 건드리지 않았고, 가을에 잎이 한꺼번에 노래지면 그해 풍년이 든다고 믿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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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용계리 은행나무
경북 안동시
안동 길안면에 있습니다. 키 47m 로 이 글에서 가장 높고, 가슴 높이 둘레 14m 로 국내 은행나무 가운데 가장 굵습니다. 칠백 살이 넘은 것으로 봅니다.
주차가 되고 상시 개방입니다.
원래 용계초등학교 운동장에 있던 나무입니다. 임하댐이 생기면서 물에 잠길 자리가 됐는데, 이만한 노거수는 옮겨 심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자리에 흙을 15m 쌓아 인공섬을 만들고 나무를 수직으로 들어 올렸습니다. 지금 보는 섬은 나무 한 그루를 살리려고 만든 땅입니다. 조선 선조 때 훈련대장 탁순창이 뜻 맞는 사람들과 은행나무 계를 만들어 이 나무를 지켰고, 마을은 물에 잠겨 사라졌지만 탁씨 후손들이 해마다 제사를 지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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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주 구량리 은행나무
울산 울주군
울주 구량리에 있습니다. 높이 22m, 가슴 높이 둘레 12m. 조선 초 이지대가 서울에서 가져와 뒤뜰 연못가에 심었다고 전해지니, 그대로라면 육백 년쯤 됩니다.
주차가 되고 무료라고 적혀 있습니다. 여는 시간 제한도 없습니다.
심은 사람의 내력이 전해지는 나무입니다. 이지대는 고려 말 학자 이제현의 4대손으로, 왜구의 배를 붙잡은 공으로 상을 받고 한성판윤까지 올랐습니다. 그러다 수양대군이 김종서를 죽이고 안평대군을 유배 보내던 1452년, 벼슬을 버리고 이곳으로 내려와 이 나무를 심었다고 합니다. 여기도 아들을 바라는 사람들이 와서 빌던 나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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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동은행나무
인천 남동구
인천 남동구, 소래산 들머리에 있습니다. 높이 30m, 둘레 8.6m 이고 수령 팔백 년쯤으로 봅니다. 가지가 사방으로 고르게 뻗어 모양이 둥근 편입니다.
수도권에서 가장 가까운 한 그루입니다. 주차장이 있고(유료) 여는 시간 제한이 없어, 서울에서 반나절이면 다녀올 수 있습니다.
1992년 인천시 기념물이었다가 2021년에 천연기념물로 올라갔습니다 — 이 글에서 가장 최근에 지정된 나무입니다. 마을에서는 전염병이 돌거나 집안에 궂은일이 있으면 이 나무 앞에 제물을 차리고 빌었고, 최근까지도 음력 칠월 초하루에 제를 지냈습니다. 나무에 깃든 신이 인재가 날 기운을 가져가서 마을에 인물은 귀한 대신 사람들이 오래 산다는, 조금 서운한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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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 야사리 은행나무
전남광주 화순군
화순 이서면 야사리 마을 한구석에 있습니다. 높이 27m, 가슴 높이 둘레 9.12m, 뿌리 근처 둘레는 11.2m. 오백 년쯤 된 나무입니다.
주차가 되고 상시 개방입니다.
줄기 가운데가 동굴처럼 뻥 뚫려 있는데, 그 안에서 새 싹이 나와 자라고 있습니다. 가지 사이에는 유주라고 부르는, 아래를 향한 짧고 뭉툭한 돌기가 달려 있습니다 — 아주 오래된 은행나무에서만 보이는 모양입니다. 조선 성종 때 마을이 생기면서 심었다고 하고, 나라가 평안하면 그걸 알리고 전란이 닥치면 우는 소리를 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마을에서는 정월 대보름마다 제사를 지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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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향교 은행나무
충남 서산시
서산향교 마당에 있습니다. 높이 33m, 둘레 430cm 이고 사백삼십 년쯤으로 봅니다. 1982년에 서산시 나무로 지정됐고, 지금도 향교가 직접 관리합니다.
주차가 되고 상시 개방입니다. 향교 안이라 나무만 보고 와도 되고, 건물을 같이 둘러봐도 됩니다 — 이 글에서 유일하게 나무 말고도 볼 것이 있는 곳입니다.
1619년에 한여현이 쓴 『호산록』 에 "선인이 은행나무 네 그루를 심었다" 는 대목이 나오는데, 그중 하나로 봅니다. 나머지 여섯 그루가 전설로 전해지는 것과 달리 심은 기록이 글로 남은 유일한 나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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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와 여는 시간은 저희가 가 보고 확인한 것이 아니라 한국관광공사에서 받은 안내를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나무는 연중 그 자리에 있지만 잎이 노랄 때는 짧습니다 — 그 시기는 저희가 알 수 없으니 떠나기 전에 한 번 더 확인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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